여행으로 힐링

이집트 카이로

한비자59 2022. 12. 10. 17:39

지난 12월 21~25일까지 이집트 카이로, 룩소, 알렉산드리아(지중해 연안)를 고려대학원 원우들과 함께 여행을 한 후 26일부터 31일까지 영국(UK)에 세미나를 겸한 여행을 다녀왔다. 

 

 '승리자'라는 뜻을 지닌 나일강 유역의 중심 도시- 이집트. 카이로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다. 카이로는 아라비아어로 '승리자'를 의미한다.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카이로는 지리적인 특성상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이색지대이기도 하다.

 

피라미드의 원형은 왕조시대 초기부터 이집트에 알려져 있었던 무덤형태인 마스터 바이다. 마스 타바는 는 진흙 벽돌이나 돌로 만든 , 꼭대기가 평평한 4 각형 구조물로 지하 매장실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3 왕조의 2대 왕인 조세르는 임호테프를 건축가로 채용해 처음으로 돌만을 사용한 마스 타바를 지었다.

 

그 높이는 8m였고 각 변의 길이가 63m인 정4각형 평면의 구조물이었다. 일단 완성된 마스타 바위에 4면 바닥에서부터 증축되어 꼭대기로 갈수록 좁아지는 4 각형의 구조물을 덧붙음으로써 더욱 높아졌다. 이렇게 해서 조세르가 지은 애초의 마스 타바는 서로 다른 6개의 층을 갖는 높이 60m, 밑변이 가로 120m, 세로 108m에 이르는 계단형 구조물이 되었다.

 

사카라에 있는 이 기념물은 계단식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 세워진 중요한 석조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부는 지하 복도와 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깊이 25m, 너비 8m의 중앙통로인데 , 그 아래에 아스 완산 화강암으로 만든 지하 매장소가 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길이 544m, 너비 277m의 거대한 벽으로 둘러친 경내에 있으며 왕이 사후세계에서 쓸 물품을 놓아두던 다른 석조 구조물의 잔해가 남아있다

 

 멤피스 박물관 람세스2세상

 

 이집트 고왕국시대(기원전 2575~2134)의 수도 멤피스는  고대 이집트 도시로 나일강 서안에 위치하며, 오늘날 카이로 남쪽 25K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멤피스는 기원전 3500년 전 메네스에 의해 건립된 통일 이집트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당시는 남북 이집트의 행정적인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 당시에 멤피스는 나일 델타의 지정학적인 정점에 위치하고 있였다. 멤피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 도시로 기록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 멤피스는 이집트 수도였고 멤피스 북쪽에 있는 네크로 폴리스는 기자와 사카라와 관련된 인상적인 유적을 남겼다. 제25왕조에 이르러 멤피스는 다시 한번 중요한 도시가 되는데 이 시기의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카이로의 중심지는 타흐리르(뒤쪽 멀리 보이는 왼편이 타흐리르 광장)

 

 카이로의 행기점이자 중심지는 신시가지의 타흐리르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상업지구, 동쪽은 이슬람 문화지역으로 나누어지며, 서쪽은 타흐리르 다리를 통해 게지라 섬으로 연결된다. 게지라 섬은 우리나라의 여의도 처럼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이곳의 카이로 타워(187m)는 맨 위층이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북동쪽으로 대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탈라아트 하르브 광장을 만나게 된다. 이 두 광장을 연결하는 탈라아트 하르브 거리는 카이로의 대표적인 번화가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동쪽으로 알팔 라키 광장, 알굼후라야 광장을 지나면 조금 남쪽에 카이로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광장인 아브딘 광장을 만나게 된다. 이 광장을 끼고 있는 아브딘 궁전은 모하네드 알리 왕조 당시의 이스마일 왕이 1863 ~ 1874년 사이에 세운 사치스러운 궁전이다. 500여 개의 방과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있다고 하는데,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다트 대통령 묘

 

모하메드 안와르 사다트 (1918년 12월 25일 ~ 1981년 10월 6일, 영문표기 : Mohammed Anwar al-Sadat, 아랍어 : أنور السادات). 1918년 12월 25일 나일강 삼각주 옆의 밑 아불 쿰 (Mit Abul-kum) 생.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사망. 이집트 정치가. 나세르 등과 함께 '자유 장교들의 비밀결사(자유장교단)'를 조직하였다. 1952년의 쿠데타 이후 고위직을 맡았다.

나세르의 후임으로 1970년부터 이집트의 대통령이 된 후, 사다트는 이집트 정권의 독재적인 성격을 완화하였다. 1973년에는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을 이끌었으며 소련과의 밀접했던 관계를 끊고,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1979년에는 워싱턴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한 그의 평화에 대한 공헌으로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총리와 함께 1978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사다트는 이스라엘과의 화해를 반대하는 자신의 정적에 의해, 군사 퍼레이드 도중에 암살되었다.

 

사다트 묘 뒤편에 보이는 벽화를 당시 이집트는 사회주의 국가로써 북한과 수교한 상태였으며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다트의 죽음을 애틋하여 북한에서 파견한 미술가가 직접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

 

한편 북한과 이집트는 1963년 8월 국교를 수립하고 이어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그동안 무역협정(1957. 12, 1987. 10)·문화협정(1958. 11)·과학기술협정(1969. 10) 등을 체결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교역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으며, 1980년대부터 이집트가 실리외교에 치중하자 실질적인 교류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과는 1961년 12월 영사관계를 맺었으며, 이어 1962년 5월 카이로에 한국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한국과 이집트는 국교를 수립하지 않았지만 문화협정(1968. 8)·항공협정(1979. 9)·전력기술협정(1985. 6) 등을 체결한 상태이며,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관계 개선으로 1995년 4월 수교하여 지금은 교역물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음.

 

특히, 이집트에는 자동차 대다수가 20~30년 된 중고자동차로서 카이로 시내가 매연으로 가득 차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집트 정부에서는 중고자동차를 교체를 강제하는 법을 최근에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의 틈새시장을 현대자동차에서는 중고자동차를 폐차하고 신차로 현대차를 구입하는 차량에 대하여 환화로 약 200만 원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마케팅에 힘입어 신차 중에는 현대차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이로 유일한 순환 고속국도에 왕복 차선 광고사인이 설치되어 있는데  삼성 광고가 약 3Km에 걸쳐 설치되어있다.

 

이스라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스라엘국מְדִינַת יִשְׂרָאֵל‎ 국가희망(하티크바) 수도텔아비브(사실상)(예루살렘을 수도로 주장1) 북위 32° 04′ 00″ 동경 34° 47′ 00″ / 북위

ko.wikipedia.org

 

고대 유물의 보고 , 고고학 박물관

 

 카이로의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이집트 전 지역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작은 연못을 하나 만나게 된다. 일반 관광객들은 무심코 이 연못을 지나치게 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연못에 파피루스와 연꽃이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 이집트의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상징하는 식물을 심어놓은 것이다. 비록 자그마한 시도이지만 지역 간의 화합을 이루려는 그 순수한 의도가 매우 사려 깊게 느껴진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인 1857년에 세워졌다. 현재 10만 점이 넘는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된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3~4일이 소요된다. 전시장은 크게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고왕국 시대로부터 중왕국 시대, 신왕국 시대, 말기 왕국 시대, 그레코. 로만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유물 가운데서도 고왕국 시대의 유물인 멘카우라 왕과 두여신의 상, 그리고 중왕국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멘 투호 테프 2세 좌상.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 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기자지역에 있는 피라미드

 

세계 7세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피라미드가 연상되는 나라.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서는 이집트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피라미드는 누가 뭐라 해도 이집트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자원이다.

 카이로의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13km쯤 떨어진 곳에 '기제'라는 조그만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시 변두리의 사막 한가운데 3개의 커다란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기제의 피라미드'이다. 3개의 피라미드는 각각 쿠푸왕의 피라미드. 카프라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 등과 같은 이르으로 불리고 있다

 

 스핑크스 앞에서

 

 기원은 이집트이며,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 ·분묘 등에서 그 훌륭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기제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있다. 전체의 길이 약 70 m, 높이 약 20 m, 얼굴 너비 약 4m나 되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모세 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드나와 오로 토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테베의 암산()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BC 1600년경의 미케네의 수혈 묘(竪穴墓)나竪穴墓크레타섬에서 발견된 인영()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 숭배(페티시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또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殿)의 장식에 쓰인 것 등이 있다. 카르나크의 대신 전이 나사 카라의사카라 세라페 이온에는 길 양쪽에 서로 마주 보면서 수십 개의 스핑크스가 나란히 서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에서

 

 

이집트 카이로 카페 레스토랑 유람선 안에서 이집트 전통춤을 주는 남자 무용수, 유람선에서 바라본 카이로의 야경 카이로의 재래시장과 거리 풍경 사진 몇 장을 남겨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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